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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찾아오셔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영어성경에서는 이 지혜를 '분별하는 마음(discerning heart)'이라고 번역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심정을 읽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솔로몬에게 두 여인이 찾아와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다투었다. 그때 솔로몬은 산 아이를 둘로 나누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포기하는 사람이 아이의 진짜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이것이 분별하는 마음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비난과 고소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함으로 변화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의 말이다. 그래서 판단하지 말고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말로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한다면 그 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교만이 존재한다. 

...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오래 참으셨다. 나의 나 되기까지 오래 참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오래 참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판단하는 대상의 현재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과거와 미래를 같이 보신다. 나는 그의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알지 못한다. 또 나의 미래의 모습도 알지 못한다. 변화되지 못했던 나의 예전 모습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모자라 보여도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내다보며 기대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의 지혜이다.

- 이용규 <더 내려놓음>



하루하루의 삶속에서 너무나도 자주 '판단'의 유혹에 걸려 넘어진다. 

너무나도 자주 '판단'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판단'하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판단을 많이 할까'하며 나도 동일한 올무에 걸려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 판단은 종종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한 입술을 통해 불평, 혹은 말다툼 이라는 썪은 열매로, 심한 경우 관계의 깨어짐이라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아름답지 못한 모습에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그러나 마음의 불편함 이상의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영적 전쟁의 부분이다. 우리가 이렇게 육체로 싸우며 진을 빼는 동안, 사단은 이를 보며 기뻐할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차츰차츰 우리의 영혼을 상처내고 무너뜨리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작은 일에 시선을 빼앗겨 아둥바둥하는 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보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눈을 떠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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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개미

2011. 4. 19. 02:19 | Posted by a passing breeze



400년간 14번의 벼락과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내고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개미떼로 인해 쓰러진 나무처럼,

종종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살아가면서

큰 위기나 환난의 때에는 말씀과 성령에 의지하여 잘 극복하면서도

의외로 일상속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채 오랜세월 쌓이고 쌓여 큰 나무가 쓰러지듯 어처구니없이 쓰러져 버릴 때가 있다.



작은 상처, 작은 의심, 작은 원망, 작은 불신앙, 작은 쓴뿌리, 작은 불평, 작은 염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영혼의 나무를 개미떼처럼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지 않은 채

큰 역경을 이겨내는 것만으로 내 영혼이 잘 되고 있다라고 용단하고 있다면,

큰 일들을 이루어내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 영혼을 돌아보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사단은 어쩜 우리가 큰 일을 성공하는 것, 멋진 사역의 열매들을 맺는 것보다,

한 영혼을 조금씩 조금씩 눈치채지 못하게 좀먹고 결국엔 쓰러뜨리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영적전쟁이 어떠한 것인지 영적인 눈을 떠야만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 5: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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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whole

2011. 4. 15. 21:33 | Posted by a passing breeze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겔 37: 7)


에스겔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환상 속에서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섰다. 그 골짜기는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마른" 메말라 죽은 골짜기였으리라. 그러나 이 말라비틀어진 뼈들이 가득한, 흉측하고 소망없어 보이는 죽음에 가까운, 아니 죽음의 경계를 이미 넘어와 버린 듯한 이 골짜기에서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물어보신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길지도 않은 인생 중에 만나는 여러가지 시련, 고난, 어려움, 질병, 관계의 단절... 우리들 인생의 눈에는 이러한 것들이 에스겔이 본 죽음의 골짜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나 오래된 갈등의 문제로 곪아터지다 못해 굳은 딱지가 앉아버려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관계의 문제들,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환경의 문제로 궁지에 몰려 도무지 회생의 여지가 없어보이는 문제들, 오랜 시간 시달려온 병으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들, 맑은 샘물처럼 샘솟던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잃고 근원이 마른 샘물 같아져 버린 영혼들...


이 모든 것을 보시며, 이 모든 죽은 것들을 보시며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사람의 눈으로는, 이성적으로는, 논리적으로는 도무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황 가운데 있는가? 도우시려면 진작에 도우시지 다 끝난 이 마당에 개입하시느냐고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있는가? 기적이라도 일어난다면 모를까 이젠 다 틀렸다, 너무 늦었다라고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이 하나님의 이 질문에 당신도 응답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이 확신에 찬 긍정의 대답을 한 것인지, 자신이 없어 하나님만 아시죠라고 대답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는 적어도 이 메마른 뼈 골짜기에도 무언가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대언하여 명하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마른 뼈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들어맞아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여 이제는 사람의 모양을 되찾았다. 


우리가 처한 죽음의 골짜기와 같은 문제들...

그 문제의 해결을 어디서 찾고 있는가? 아예 포기하고 주저앉아 정말 죽은 뼈, 마른 뼈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죽은 지 아주 오래된 뼈들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 맞아서 서로 연락하듯이, 우리가 처한 문제들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원래의 자리를 찾아 그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회복된 형상은 사람의 힘으로 엇비슷하게, 혹은 모양새 그럴듯하게 끼워맞춘 뼈 모양과는 전혀 다른,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그 형상 그대로 회복된 형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회복된 형상에 다시 대언케 하신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형상만 회복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그 안에 생기를 넣어주신다.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주신다. 

그 생명을 얻어 일어난 이 무리- 이 무리는 전에 심히 마른 뼈라 불리던 무리임을 기억하는가-는 "극히 큰 군대"로 섰다.

원래의 형상을 회복할 뿐 아니라 생기를 얻어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르심의 자리에까지 서게 된 것이다.


당신의 삶이 끝장난 것 같은가? 

관계가 다 끝난 것 같은가?

더이상은 어떤 소망도 붙들 수가 없는가?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든, 당신이 지금 죽음의 골짜기에 있다면 '아주 마른 뼈'들을 온전하고 새롭게 만드셔서 "극히 큰 군대"를 만드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함으로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약속을 의지하자. 그 때 우리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37: 14)